[Ep.7] 프레이밍 효과:
"90% 무지방"이 "10% 지방"보다 잘 팔리는 이유
틀(Frame)을 바꾸면 선택이 달라진다: 뇌의 인지적 한계
마트의 유제품 코너에 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. 진열대에 두 종류의 우유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. A 우유의 포장지에는 "지방 함유량 10%"라고 적혀 있고, B 우유에는 "90% 무지방"이라고 적혀 있습니다. 가격과 용량은 동일합니다. 당신은 어떤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으시겠습니까?
대부분의 소비자는 망설임 없이 "90% 무지방" 우유를 선택합니다. "지방 10%"라는 문구는 왠지 살이 찔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, "90% 무지방"은 건강하고 깨끗한 긍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.
하지만 수학적으로 이 둘은 완벽하게 동일한 제품입니다. 전체의 10%가 지방이라면, 나머지 90%는 지방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.
내용물(Fact)은 같지만 포장지의 문구, 즉 '어떤 틀(Frame)'로 정보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판단과 선택은 180도 달라집니다. 이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'프레이밍 효과(Framing Effect)'입니다.
"아 다르고 어 다르다"라는 속담처럼, 같은 사실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뇌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. 오늘 [행동경제학 Ep.7]에서는 우리의 합리성을 마비시키는 '틀의 마법'에 대해 심층 분석합니다.

▲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, '프레임'을 통해 해석해서 봅니다.
어떻게 말하느냐(How)다."
- 행동경제학의 기본 격언
1. 생사를 가르는 말장난: 아시아 질병 문제
프레이밍 효과의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예시는 1981년 대니얼 카너먼(Daniel Kahneman)과 아모스 트버스키(Amos Tversky)가 고안한 '아시아 질병 문제(Asian Disease Problem)'입니다. 이 실험은 인간이 이득과 손실을 처리할 때 얼마나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지를 증명했습니다.
미국에 치명적인 아시아 전염병이 돌아 600명이 사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.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(A, B)이 제안되었습니다. 당신이 정책 결정자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?
2. [실전 분석] 이득의 프레임 vs 손실의 프레임
동일한 상황을 두고 표현 방식만 바꿨을 때, 사람들의 선택이 어떻게 극적으로 뒤바뀌는지 확인해 보십시오.
프레임 1: 긍정적 표현 (생존 강조)
- 프로그램 A: 200명이 확실히 산다.
- 프로그램 B: 600명이 다 살 확률이 1/3, 아무도 못 살 확률이 2/3이다.
압도적으로 많은 사람(72%)이 프로그램 A를 선택했습니다. '산다(Live)'라는 긍정적인 프레임 안에서는, 불확실한 대박보다는 확실한 이득을 선호하는 '위험 회피(Risk Aversion)' 성향이 나타납니다.
프레임 2: 부정적 표현 (사망 강조)
- 프로그램 C: 400명이 확실히 죽는다.
- 프로그램 D: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1/3, 600명이 다 죽을 확률이 2/3이다.
놀랍게도 78%의 사람들이 프로그램 D를 선택했습니다. 사실 A와 C는 (200명 생존 = 400명 사망)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같은 말입니다.
하지만 '죽는다(Die)'라는 손실 프레임이 씌워지자, 사람들은 확실한 손실(400명 사망)을 피하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'위험 추구(Risk Seeking)' 성향으로 돌변했습니다.
이 실험은 인간이 절대적인 효용을 계산하는 기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. 우리는 이득 앞에서는 겁쟁이가 되고, 손실 앞에서는 도박사가 됩니다. 정치인이나 마케터들은 이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.
"사망률 10%"라고 말하는 대신 "생존율 90%"라고 말하여 수술 동의를 받아내고, "현금 결제 시 1,000원 할인" 대신 "카드 결제 시 1,000원 수수료 부과"라고 말하여 현금 결제를 유도합니다.
3. 일상 속의 프레이밍: 질문이 답을 결정한다
프레이밍 효과는 우리의 일상 소비와 의사결정 곳곳에 침투해 있습니다. 특히 '옵션의 제시 방법'이나 '기준점 설정'에 따라 우리의 지갑은 너무나 쉽게 열립니다.
- 분할 가격 표시 (Pennies-a-day):
"1년에 36만 원"이라고 하면 비싸게 느껴져서 가입을 꺼립니다. 하지만 "하루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990원"이라고 프레임을 바꾸면, 갑자기 저렴하고 합리적인 소비처럼 느껴집니다. 총액의 고통을 쪼개어(Framing) 심리적 저항감을 낮추는 전략입니다. - 소고기의 지방 함량:
서론에서 언급했듯 "지방 20%" 고기보다는 "살코기 80%" 고기가 더 잘 팔립니다. 부정적인 속성(지방)은 숨기고 긍정적인 속성(살코기)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제품의 품질을 더 좋게 인식하게 만듭니다. - 정치적 여론 조사:
"복지 정책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내시겠습니까?"라고 물으면 반대가 많습니다. 하지만 "사회적 약자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늘리시겠습니까?"라고 물으면 찬성이 늘어납니다. 질문의 프레임이 대중의 답을 유도합니다.
4. 프레임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'리프레이밍(Re-framing)' 기술
상대방이 짜 놓은 틀 안에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.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주어진 프레임을 깨고 나만의 관점으로 다시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.
- 원칙 1: 단위를 바꿔서 계산하라 (Zoom Out)
"월 1만 원"이라는 구독료가 작아 보일 때, 이를 "1년 12만 원, 10년 120만 원"으로 환산해 보십시오. 반대로 "1억 원"이라는 집값이 너무 커 보일 때, 평당 가격이나 월 대출 이자로 환산해 보십시오. 프레임의 단위를 바꾸면 숫자의 진짜 무게가 느껴집니다. - 원칙 2: 반대말을 대입해 보라 (Inversion)
"수술 성공률 95%"라는 말을 들었을 때, 즉시 "수술 실패율 5%"라고 바꿔서 생각하십시오. 100명 중 5명이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하면, 95%라는 숫자가 주는 막연한 안도감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위험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. - 원칙 3: 선택지를 스스로 만들어라
누군가 "A를 할래, B를 할래?"라고 묻는다면, 그건 좁은 프레임입니다. "A와 B 둘 다 안 하고 C를 하는 방법은 없을까?" 혹은 "지금 결정을 미루는 D라는 선택지는 없을까?"라고 질문하십시오. 상대방이 제시한 보기 밖으로 나가는 순간, 진짜 자유로운 선택이 시작됩니다.
"본 블로그의 글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작성된 비즈니스/심리학 정보성 칼럼입니다. 실제 협상 결과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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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, 흥미로우셨나요?
다음 글에서는 당장의 달콤함 때문에 미래를 팔아넘기는 '현재 편향'에 대해 알아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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